大學古本

Producted by Jeong Taeg Hun

■사서(四書)의 하나. 원래는 《예기(禮記)》 제42편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이념을 서술한 책으로, 한(漢)나라 때 성립했다고 한다. 주희(朱熹;朱子)는 이 책을 사서 중에서 <초학(初學)의 덕(德)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였고, 학문의 입문지침서로서 중요시하였으며, 본문에 탈락과 착간(錯簡)이 있다 하여 논리적으로 재구성하여 《대학신본(大學新本)》의 원전(原典)을 정하고, 주석을 달아 《대학장구(大學章句)》라 하였으며, 임종 며칠전까지 계속해서 개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대학》은 공자(孑仔)의 말을 제자인 증자(曾子)가 조 (祖述)한 경(經) 1장과 증자의 생각(뜻)을 문인(門人)이 기록한 전(傳) 10장으로 되어 있다. 경은 <명덕을 분명하게 함(明明德)> <백성을 새로이 함(新民)> <지선에 머무름(止於至善)>이라는 3강령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에 의하여 정신 수양으로부터 정치적 실천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설명하고 있다. 전은 3강령 8조목의 보충설명이며, 그 중 <격물치지>를 설명하는 전 5장은 탈락되었다고 보고 보전(補傳)을 썼다. 그만큼 <격물치지>를 중요시한 것이다. 이 개편·주석에 의해서 《대학》은 주자학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부여받았는데, 후세의 경서개찬(經書改纂)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왕양명(王陽明)은 《예기》 중의 <대학고본(大學古本)>은 완본이며, 탈락과 착간은 없다고 하면서 《대학신본》을 부정했으나, 이 무렵부터 《대학》 개편의 시비와 사상 내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활발해졌으며, <격물치지>의 해석에 72가지나 되는 설(說)이 있었다고 한다. -야후 백과사전.
■주희가 정이의 설을 따라 3강령 중 ‘親民’을 ‘新民’으로 고치고, 본래 있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조 앞에 격물과 치지의 장을 새로 지어 보망(補亡)한 8조목을 만든 이래, 송대 성리학을 존숭하는 이들과 고본 《대학》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왕수인은 ‘신민’이 옳다고 하여 고본 《대학》을 따랐으니,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 주희는 사서를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으로 읽으라 할 정도로 대학을 중요시했다. -위키백과.
■《대학》은 자기 수양을 완성하고 사회 질서를 이루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론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대학’(大學)이라는 의미는 통치자의 학문이라는 설과 인격자의 학문이라는 설로 나눌 수 있다. 주자는 《대학》이 소학(小學)을 마치고 태학(太學)에 입학하여 처음 배우는 개설서라고 했는데, 오늘날 대학교의 기본 교양 교재와 같은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은 유가 사상의 주요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수기치인(修己治人), 곧 자신을 수양한 후에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즉 사회의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한 후에 이를 주변 사회로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삼강령과 팔조목에 담아 내었다. -위키백과.

■텍스트인 한자원문은 '예기'의 한부분인 '대학고본'을 사용하였고, 맨 뒤에 주희가 쓴 '격물치지' 보전을 추가하였다.
■한자원문 단락은 전체 텍스트에 대한 전후 순서를 표시하였으며, 자료분류의 체계는 널리 알려진 '대학장구'의 경(經)과 전(傳) 체계를 이용하였다.
■따라서 텍스트의 전후 진행에 따라 분류 항목에 일관성이 없게 나타나는데, 이는 주희가 착간이 있다하여 순서를 일부 조정한 결과이다.
■한 단락마다 원문,해석,독음,주석을 표시하였고, 우측 상단에는 '대학장구'에 의한 분류를, 하단에는 전체 분류중의 현재 단락을 나타나도록 하였다.

構成

說明

大學古本(대학고본)

原文
讀音
解釋
注釋
/54
傳 >>
格物致知 補傳
明明德
新民
止於至善
本末
格物致知
誠意
正心修身
修身齊家
齊家治國
治國平天下
大學章句에 의한 分類 :
/
大學章句에 의한 分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