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그리고 복제

운전석에 있다보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손님들이 버스를 보는 모습과 버스를 타는 모습, 차내를 이동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정류장을 지나치거나 급정거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류장 손님을 파악해야 하고 차내 손님은 특히 요주의 사항입니다.

운전 경력이 쌓이면 운전 자체 보다는 차내 안전사고가 더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초보 시절에는 차를 운행하는데만 온 신경이 쓰이고 차내 상황은 2차적인 문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사실 손님이 앞문으로 승차하여 뒷쪽 좌석으로 이동하는 사이 차는 출발을 하여야 하니 여간 세심한 주의가 아니면 승객이 쏠리거나 쓰러질 염려가 큽니다.

연로하신 분이나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분, 술에 취한 승객은 그야말로 골치입니다.

동작을 재촉할수는 없고 안전한 자세를 취할 때까지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요.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는 진땀이 나기도 합니다.

그 짧다면 짧은 시간에 남과 여, 복제에 대해 생각이 미치기도 합니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 여 구분이 적어 지는 것 같습니다. 생기발랄한 남성과 여성에서 노인이라는 한 부류로 합쳐 지는 느낌입니다. 특히 부부처럼 보이는 남여는 얼핏보면 남매같은 모습을 하기도 합니다. 성별 호르몬이 적어지니 중성화 되고 서로에게 적응이 되다보니 모습도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발한 생각이 가끔은 떠오르곤 하니 그것은 복제라는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살지만 그 이름에 걸맞는 외양은 젊어서부터 늙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언제나 처럼 그만한 수의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과 중년, 노인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가능하려면 인간은 자기모양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나이가 차면 소멸하고 하는 것이 겠지요?

손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홍길동이 계속되는 상상을 합니다, 홍길동은 홍말석과 홍끝녀를 낳고(물론 그의 처 김일여가 실제로 낳겠지만) 홍말석은 홍선화를 홍끝녀는 김막내를 낳고(이 경우는 홍끝녀가 김막내를 실제로 낳겠지요) 하여 홍길동이 지금부터 미래까지 끝없이 이어 지겠지요.

홍길동은 홍말석과 홍끝녀가 되고 홍끝녀는 김막내가 되고....

이때의 아들과 딸은 남, 여로 대치가 되고 생물학적으로는 복제의 매체가 되겠지요. 제가 느끼는 감상은 이름이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현재의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인간 개체는 지속적으로 계속된다는 깨달음이지요.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200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