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silence)

 

교회청년이 "숨어버린 크리스챤(카쿠레 기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예수를 부인하고 침묵을 강요당하고 평생을 일본인으로 산 포르투갈 신부를 추적한 영화 "침묵"을 소재로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하게 하는 설교였다. 실제로 영화를 보니 16세기 처음 천주교가 전해졌던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역사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리스챤이 적지만 우리보다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한때는 기독교 신앙이 넓게 전파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지금도 신도(神道)와 불교(佛敎)가 주 신앙인 나라이다. 그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은 기존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용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후에 우리 나라에도 천주교가 전파되었고 일본과 같이 지배층에 의한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는 몇번의 극심한 탄압으로 개화기때 개신교가 다시 전파되기까지 지하에서 간신히 명백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일본의 전철을 밟은 것이다.

영화는 1640년에 시작된다. 일본에서 기독교(천주교)를 선교(宣敎)하는 신부(神父)가 일본막부(江戶幕府)의 극심한 회유에 굴복하여 배교하고 사라진 것이다. 로마에서는 이 신부를 찾기 위해 두명의 신부를 은밀히 파견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선교사 추방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마카오를 거쳐 큐수로 잠입한 신부들은 흩어진 신도들을 추스르고 사라진 신부를 추적하지만, 모두 관헌에 체포되고 만다. 신부들은 그들의 신앙을 버리라는 집요한 고문과 괴롭힘을 당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버틴다. 그러나 카르베 신부는 자신을 배교시키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신도들을 구하다가 같이 익사하고 만다. 마침내 로드리고 신부 앞에 자신이 찾던 페레이라 신부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 때문에 죽어가는 신도들과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실망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말한다. 사형수의 이름을 가지고 처자식을 둔 일본 선불교의 승려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자신들의 선교는 실패하였고 일본인들이 받아들인 하나님은 자신들이 전해준 신이 아니며 일본에는 자신들이 몰랐던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태양신()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득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지만 페레이라 신부가 굴복한 똑같은 방법 앞에 로드리고 신부는 버티지 못한다.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피를 조금씩 흐르게 하여 머리를 땅 속 웅덩이에 빠뜨려 서서히 죽이는 것이다. 그가 보는 앞에서 몇 명의 신도들이 조금씩 땅 속으로 내려지는 것이다. 그는 울부짖으며 “후미에(踏み絵)”를 밟는다. 예수의 얼굴을 밟은 것이다. 그도 역시 오카다 사에몬이라는 사형수의 이름을 물려 받고 아내와 자식을 얻는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부정하고 일본인으로 죽어가지만 화장하는 그의 손에는 일본인 아내가 몰래 쥐어준 작은 십자가가 있었다. 그가 정말로 신을 버렸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그 두 배교한 신부의 존재는 네델란드 상인을 통하여 서양에 알려진다. 그들은 나가사키(長崎) 데지마(出島)에 있었던 네델란드 상관(商館)에서 수입되는 물품을 검사하며 그 중에 숨겨 들어오는 기독교에 관련된 것들을 감별하는 역할을 하여 타락한 천사(Fallen Angel)”로 불렸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일본 관헌들의 고문과 회유 방법들이 많이 나오는데 배교자(背敎者)를 만드는 후미에가 보는 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금속이나 나무에 기독교에 관련된 성화나 십자가를 그려 놓고 대중들 앞에서 밟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도가 아니라는 것을 공개하는 것이다. 밟고 안밟고는 각자의 몫이고 밟으면 죽임은 면한다. 그것은 밟고서 목숨을 구한 신자들의 기독교 신앙을 죽이는 것이다.

영화 침묵(沈默(ちんもく))은 엔도 슈사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 한다

서부열강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복음을 미개한 미전도 종족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기회를 찾고 있었다. 항해를 통한 세계전략에 치중한 나라들은 천주교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 개신교 국가인 영국 네델란드였다. 한국은 특이하게도 선교사들이 입국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중국을 통하여 서학(西學)이라는 학문 형태로 그 사상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천주교 신앙으로 발전하여 중국에 있는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자체적으로 신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에 신자가 많았다고 한다. 천주교에 대한 최초의 박해는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라고 알려진다. 그 이후에도 1801년 신유박해, 1866년 대대적인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천주교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이어졌다. 이에 비해 일본에는 로마교황청 예수회를 통한 체계적인 선교가 행해진다. 최초의 기독교 전파는 1549년 포르투갈인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때 일본은 각 지역에 독립된 영주 다이묘(大名)가  정권을 잡아 서로 다투는 전국시대(戦国時代)였다. 천주교 선교사들은 무역선에 동승하여 실권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신앙을 전하였다. 서구의 무역선들은 강력한 무기와 대포, 그리고 교역물품이 채워져 있었다. 전국시대에서 살아 남으려면 강력한 무기와 대포는 필수품이었다. 1557년에서 1587년 사이 일본에서는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영주 곧 다이묘가 56명에 이르고 크고작은 교회가 200, 선교사들은 일본인 수사 47명을 포함해 113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때 신도수는 2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외국인 선교사 추방령을 내려 천주교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일본의 기존 신앙인 신도와 불교와는 다른 기독교 신앙이 일본을 지배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곧이어 1617년에는 천주교 금지령을 내려 천주교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한다. 17세기 초인 1624년 경에는 천주교 신자수가 최대 60~75만 사이였다고 한다. 그들은 포르투갈어 “cristão”에서 따온 말로 기리시탄(吉利支丹)으로 불렸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공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도 천주교 신자였다고 알려진다. 천주교에 대한 가혹한 박해는 신도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켰는데 1637년 시마바라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다. 규슈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의 사마바라 번(島原藩)과 가라쓰 번(唐津藩)에서 기리시탄을 주축으로 4만명이 경제적인 수탈과 종교탄압에 저항하여 일으킨 반란이었다. 반란은 에도막부(江戸幕府)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결과는 피를 부르는 참혹한 박해였다. 배교를 거부하는 신도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배교한 신자들은 잠복 기리스탄(隠れキリシタン)이 되었다.

영화는 이 시마바라 반란 직후인 1640년에 시작한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1587년 추방령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일본에서 잠적하는 것을 선택한다. 신자들과 은밀히 미사를 진행하고 그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그들이 선교한 영혼들을 모른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명씩 잡히고 영화 속 페레이라 신부는 1633년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는 배교후 1652년 까지 생존하며 일본 선()에 관한 책도 썼다고 한다. 천주교 금지령이 해제된 1873년 이전인 1865년에 숨어서 신앙을 지킨 잠복 기리시탄들이 발견되었는데 200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신앙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카톨릭으로 복귀하였지만 일부는 복귀를 거부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그들을 떨어진 기리시탄(離れキリシタン)이라 한다. 그들은 성경도 없이 기억력과 구전으로만 찬송을 전해 받았고 무슨 내용인지 모를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상들의 그 소중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탄압이 극심할 때 천주교 신자 90%는 불교나 신도로 개종하였고, 10%만이 잠복 키리시탄으로 남아 있어서 명백을 유지하다가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었을 때 카톨릭으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현재 일본은 여전히 신도(神道)와 불교(佛敎)의 나라이다. 일본 전체 천주교 신자 수는 44만명(0.35%), 개신교 50만명(0.4%) 수준이다. 어느 통계는 전체 기독교 인구를 300만 정도로 추산하기도 한다. 400년이 넘는 선교역사를 가지는 일본은 집권세력이 신자들 앞에 펼친 후미에 앞에 철저히 유린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로드리고 신부를 굴복시킨 영주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너는 내게 굴복한 것이 아니다. 일본에 굴복한 것이다. 너의 종교는 이제 뿌리가 썩을 것이다”.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를 굴복시킨 영주들과 관헌들은 이렇게 그들을 몰아 세웠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전하지 않았으면 이들은 죽지 않았다. 너희는 너희의 순교를 위해서 죄없는 사람들을 죽게하고 있다.” 그 신부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언제나 침묵하고 계셨다.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고 그들의 기도에도 응답하지 않으셨다. 다만 “후미에” 속에서 그들을 보고만 있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일본에 있는 신(神)들은 그 땅에서 고전하고 있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일본에는 진실로 하나님만을 찾고있는 신실한 크리스챤들은 많다. 선교역사에 비해 신도수가 적을 뿐이다. 그러나 그 땅에 뿌려진 그 순교의 피는 일본을 거룩한 땅으로 만드는 밀알들을 키울 것이다. 순교의 피는 그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2017.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