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

위키백과에 따르면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란 사회에 공존하는 종교적 믿음의 체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나 원리를 말한다. 절대적인 진리의 배타성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적인 종교철학이다. 절대적인 유일한 진리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의 진리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상호 배타적인 진리가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고 그 믿음의 절정에 이르면 모두 한 지점에서 만난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한다. 각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종교를 배타적으로 내세우지 말고 상대 종교를 수용하여 각자 그 믿음을 증진시켜 진리, 즉 구원에 이르자는 말이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합리적인 말처럼 들린다. 저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그 말의 맹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지금 저의 위치가 남들보다 더욱 우월한 도덕적 위치에 있고, 지나간 나의 삶이 아주 깨끗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저의 주장의 주 대상은 기독교에 비교적 우호적이지만 다른 종교에도 나름대로 진리가 있으니 좀 더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갖자 하는 분들을 염두에 두었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이러한 주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넷을 뒤져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구원관을 정리한 글을 인용하였다.
"(한국) 기독교의 구원관: 기독교의 구원관은 그 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해 불교나 유교가 지니는 우리 문화와의 친화성보다 더 소원한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자기 이외의 여타의 전통신앙이나 종교를 사신우상숭배(邪神偶像崇拜)로 비난함으로써 격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의 전통신앙이 지니고 있는 제천신앙이라든가 무속신앙의 중보자(仲保者: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 매개자) 개념이 어렵지 않게 수용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창조주와 구세주를 명시함으로써, 의외로 성공적인 구원관의 전개를 우리의 종교문화 속에서 실현하였다.
창조주인 신은 다만 초월적인 힘이나 그 힘의 권화(權化)로서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신성의 주체로 여겨지면서, 그 뜻의 실현이 곧 삶의 완성이라는 구원의 개념을 확립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필요충족 기능의 매개자로서가 아니라 , 삶의 당위충족 기능으로서의 의미의 매개자로 구세주를 설정함으로써 기복양재(祈福禳災)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특별히 기독교는 불교의 수련공동체적 특성이나 유교의 혈연적 제사 공동체적 특성과는 다른 생활 공동체적 성격을 발전시킴으로써,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망라하는 집단의 성원과 모든 삶의 영역에 대한 관심을 구원의 내용으로 수렴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또 다른 글을 인용하였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원이 있다는 입장,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배타주의지만, 하느님의 은혜와 진리, 구원의 빛은 시대와 장소의 구분을 넘어 포괄적으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포괄주의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과 진리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원적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입장 안에서도 이미 배타적이며 포괄적이고 다원적인 견해가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종교신학적인 성격) "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인용한 두 글의 내용을 보면 이미 한국인의 문화적 배경에서나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 안에서나 종교다원주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의 기질 안에는 전통적으로 다른 종교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수용적이며, 각 종교에서도 어느 정도 다른 종교의 요소가 녹아 있으므로 우리가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그 논리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엄격하게 우리가 믿는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종교다원주의를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강조하지만 다른 종교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러나 조금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나의 의도는 종교다원주의를 정확히 이해하자는 것이고 두루뭉실 우리의 촛점을 흐리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 종교다원주의가 진리가 아닌 이유 첫째는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른다.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의 교리를 존중한다. 그리고 인간의 분별력을 믿는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각 종교를 선택하고 각기 교리에 따라 정진하여 그 종교 교리가 가르치는 진리에 이르게 된다는 긍적적인 사고에 기초한다. 가장 인본적인 사고를 가지고 인간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충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또 우리가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롬 11:8)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 11:5)

● 종교다원주의가 진리가 아닌 이유 둘째는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 인생을 윤회(輪廻)적인 관점으로 이해하지 않다면 우리가 사는 인생의 연한은 길어야 백년이다. 혁신적인 발전이 없는한 우리 신체는 세월에 따라 점점 노쇠해지며 정신적으로도 퇴화한다. 우리는 이런 저런 종교를 넘나들 시간이 절대로 부족하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절대 진리를 찾아 그것을 쫓아야 한다. 그러기에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6)

● 종교다원주의가 진리가 아닌 이유 셋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증거이다.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 조차도 미심쩍어 하는 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 특히 구약성경은 곧 하나님이 이 세상 인간들에게 자신을 나타낸 증거이다. 성경을 쓴 저자들은 사람들에게 거짓을 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군가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였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였다.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옮겼고,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게 한 예언을 성경에 썼던 것이다. 그 수많은 성경의 사본(寫本)들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오랜 세월 일관성을 유지한 것은 그 책이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멈춘 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 자신의 증거인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5)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민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106:8)

● 종교다원주의가 진리가 아닌 이유 네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사실 중 하나가 진실이다. 그 중 하나는 예수란 인물이 역사상 가장 교묘한 사기꾼이던가, 아니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던가이다. 이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예수에 관련된 것이 거짓이었다면 인류 역사상 2,000년의 검증과정이 주어졌었다. 그 동안 신약성경을 반증하는 어떤 증거도 제기되지 않았고 그를 반박하는 어떤 인물도, 심지어 그를 부정하는 신(神)이라고 자칭하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와 증언만 쌓여갈 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 14:6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종교다원주의는 비교적 양심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 선뜻 구원관이 뚜렸한 종교에 빠지기를 주저하면서 주장하거나, 종교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말하기 쉬운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 타당한 면이 있으나 가치 중립적인 것을 가장하여 진리에 대한 치열함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있다. 진지하게 사후세계를 생각하거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추구한다면 결코 두루뭉실하게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인생을 모호하게 살 권리는 없다. 우리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9.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