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滴穿石(수적천석)

 

한두방울 떨어지는 물들이 마침내는 돌도 구멍을 낸다는 말이다. 권투에서도 큰 어퍼컷 한방을 맞고 녹다운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랑비에 옷젖는다고 쉴새없이 맞은 잽에 대미지(damage)가 누적되어 작은 주먹 하나에 풀썩 주저앉는 경우를 본다.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금과옥조들을 살펴보면 한번은 실소를 하며 들을 수 있지만 그것이 누적되어 전체를 이룰 때 강력한 도그마를 형성하여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한두방 날려대는 잽들을 보자. 그것들은 하나하나 별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여러가지 요인으로 한 덩어리를 이룰때 돌에 구멍을 내기까지하는 강력한 쇳덩이가 된다.

첫번째 물방울, 훈요십조

훈요 십조(訓要十條)는 《고려사》에 수록된, 고려 태조가 후손에게 남겼다는 열 가지 가르침이다. 태조 26년(943년) 4월 태조(왕건)가 박술희를 내전(內殿)으로 불러 전해 주었다고 알려졌다. 신서십조(信書十條) 또는 십훈(十訓)이라고도 하며, 《고려사》(권2, 세가2)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 그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계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오른 고려 현종 때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훈요 십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불교를 장려하되 간신과 승려들의 사원 쟁탈은 못하게 하라.

■ 도선 스님이 정해 놓은 땅 이외의 곳에 함부로 절을 짓지 마라.

■ 장자가 왕위 계승을 하되, 어질지 못하면, 신망있는 자에게 전통을 잇게 하라.

■ 고려의 특성에 맞게 예약을 발전시켜라.(거란의 제도는 본받지 마라.)

■ 지맥의 근본인 서경을 중시하여, 서경에서 1년에 100일간 머물라.

■ 연등(燃燈)과 팔관(八關) 등을 소홀히 하지 말라.

■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신상필벌을 확실히 하라.

■ 차령산맥 남쪽과 공주강(금강) 밖 지방은 산세가 거꾸로 달려 역모의 기상을 품고있으니 결코 그 지역 사람을 중히 쓰지 말라.

■ 백관의 녹봉을 제도에 따라 마련했으니, 함부로 증감하지 말라.

■ 경전과 역사를 널리 읽어 온고지신의 교훈으로 삼아라.

문외한이 보기에 불교를 숭상하는 것과 풍수지리가 교훈의 핵심이며, 왕조의 존속을 위해 지켜야할 할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문제가 되는 8번 지시사항이다.

■ 其八曰 車峴以南公州江外山形地勢 趨背逆人心亦然彼下州郡人 與朝廷與王侯國戚婚姻得秉國政則或變亂國家或 統合之怨犯 生亂且其曾屬官寺奴婢津驛雜尺或投勢移免或附王侯宮院姦巧言語弄權亂政以致變者必有之矣. 雖其良民不宜使在位用事.

■ 차현(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ㆍ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ㆍ국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를 변란하게 하거나 통합당한 원망을 품고 임금의 거동하는 길을 범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며,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와 진(津)ㆍ역(驛)의 잡척(雜尺)에 속했던 무리들이 권세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신역을 면하거나 왕후나 궁원에 붙어 말을 간사하고 교묘하게 하여 권세를 부리고 정치를 어지럽혀서 재변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그 선량한 백성일지라도 벼슬 자리에 두어 권세를 부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해석하자면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바깥지역은 산형과 지세가 배역하니 그 곳 사람들의 인심, 심성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역 사람을 조정에 참여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산형, 지세 외에 한가지를 더 꼽고 있으니 그들이 나라를 통합당한 원한을 품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나라를 통합당한 곳은 어디인가.

왕건은 개경을 근거로 한 바다상인 출신이다. 굳이 말하자면 개경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그에게 통합당한 지역이지 어느 특정한 지역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왕건과 가장 늦게까지 대치한 후백제를 그 지역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車峴以南, 公州江外의 지역은 어디인가?.

한자를 보면 車峴의 峴은 고개/재 峴자로 높지않은 야트막한 지역를 뜻하는 글자다. 嶺이란 글자는 높고 큰 산들을 거느리고 있는 지역을 뜻하는 글자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고개나 재가 많으며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종적개념이며 지역의 높낮이에 따라서 峴와 嶺를 선택하여 사용했다.

고문서/기록들을 보면 차현고개(지역주민들은 수레티고개라 함)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사이의 고개이다. 지금도 차현고개 표식이 남아있으며 차현고개는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산성,사찰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문제는 훈요십조를 원문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원문의 峴이란 글자를 嶺으로 바꿔치기하여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峴자를 嶺자로 바꿔치기하는 것도 모자랐는지 한술 더떠서 종적개념인 峴자를 산맥처럼 길다란 횡적개념인 산맥으로 왜곡하여 원문의 車峴以南을 車嶺山脈以南으로 조작함으로써 원문의 뜻이 완전히 달라지도록 만드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車嶺山脈 명칭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처음 만들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 일제시대 이전의 산경도나 지리서에는 없는 명칭이다.

고토분지로가 명명한 車嶺山脈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부근에서 분기하여 남서로 뻗어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도계를 이루고 충북과 충남 경계지역에서 끊긴다. 일부 지리학자들은 충남 북부지역에 나타나 서해까지 뻗은 산맥도 車嶺山脈으로 넣는다.

다음으로 훈요십조 8항 車峴以南, 公州江外의 公州江外는 어디인가.

동국여지승람등에 보면 금강을 사자수,사비수,사비강,백강,백촌강,백마강,금강으로 불렸으며 금강 상류를 적등진강,웅진지역을 웅진강,부여지역을 백마강,하류지역을 고성진강으로도 불렀다.

공주강은 공주지역을 감싸고 흐르는 금강의 공주지역을 지칭하였다.

낙동강이 지역에 따라 안동강,영강,금호강,밀양강,남강이라 부르고 한강이 지역에 따라 홍천강,평창강,주천강,동강,소양강,북한강,섬강,남한강,임진강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훈요십조 8항의 車峴以南, 公州江外를 그대로 해석하면 차현고개 아래와 공주고을을 감싸고 흐르는 공주강 바깥쪽 사이의 지역을 말함이니 지도를 보면 지금의 청주지방이 된다.

궁예는 변란을 피해 차현고개 인근의 칠장사에서 유아때부터 10세까지 보냈다.

그런 연유로 청주지방 일대는 궁예의 고향으로서 정치적기반이 되었으며 궁예가 청주출신 사람들을 각별히 신임하여 중용하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청주사람들을 철원으로 이주시켜 왕조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궁예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왕건은 궁예의 고향이자 왕조의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경계하지 않을수 없었고, 궁예의 추종세력들인 청주지방의 임춘길,이흔암,선장형제등의 반란이 끊이지 않아서 왕건이 그지방 호족들에게 동물의 성씨를 내리면서까지 탄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청주위쪽 차현고개아래의 진천은 고구려/백제 멸망에 앞장선 김유신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왕건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김유신을 안좋게 평했다.

왕조가 바뀌면 이전 왕조의 기반이 되었던 지역은 새왕조에서 경계하게 되고 또한 이전 왕조의 기반이 되었던 지역은 옛 영화를 되찾고자 틈만나면 도발함으로 왕건이 궁예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경계하라고 후손에게 유훈을 남긴 것은 당연하다.

위와같은 방식으로 문경峴以南  安東江外라 하면 문경고개이남과 안동고을을 흐르는 안동강과의 사이를 말하는 것이며 소백산맥이남과 낙동강이남 전체를 뜻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나 악의적인 사람이 훈요십조의 원문 車峴以南, 公州江外을 해석하면서 차현고개를 차령산맥으로 왜곡하고 공주강은 금강으로 왜곡하여 원문의 뜻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되도록 만든다.

또한 그런 사람이 주장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여도 車峴以南을 차령산맥으로 해석하면 충청도 대부분이 포함되고 車峴以南을 빼고 公州江外을 금강지역 전체로 해석하면 충청도 인구의 2/3 이상이 포함되는데도 충청도는 아니라는 모순된 논리를 펴며 전라도를 악의적으로 공격한다.

출처: 인터넷 백과, 동아닷컴 동아누리 토론공감

특정지역을 걸고 넘어가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훈요십조 8항의 문맥과 현재 지명의 연구에 따르면 그것이 가르키는 곳은 극히 좁은 의미의 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차령산맥을 거명하며 그 이남지역을 가르킨다 하면 왜 그 문맥이 전라도 지역만을 지목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두번째 물방울, 정도전의 조선 팔도 인물평

원전을 찾아보니 "~하더라"가 대부분이라 검색결과만을 올려본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삼봉)이 태조의 명을 받고 풍수지리에 입각한 조선 팔도 인물평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 경기도: 경중미인(鏡中美人) = 거울속의 미인처럼 우아하고 단정하다

■ 함경도: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처럼 맹렬하고 악착스럽다

또는,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 거친 돌 밭을 가는 소처럼 묵묵하고 억세다

■ 평안도: 맹호출림(猛虎出林) = 숲 속에서 나온 범처럼 매섭고 사납다

■ 황해도: 춘파투석(春波投石) = 봄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하다

■ 강원도: 암하노불(巖下老佛) = 큰 바위 아래에 있는 부처님처럼 어질고 인자하다

■ 충청도: 청풍명월(淸風明月) = 맑은 바람과 큰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하다

■ 전라도: 풍전세류(風前細柳) = 바람결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다

■ 경상도: 태산준령(泰山峻嶺) = 큰 산과 험한 고개처럼 선이 굵고 우직하다

또는,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 = 소나무나 대나무와 같은 큰 절개를 가졌다

몇백만의 사람들을 한자넉자로 표현하겠다는 발상이 대단한 자신감이라 하겠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지..

또한, 정도전이 지었다는 팔도강산 칠언시도 돌아 다닌다.

■ 泰山高嶽 望夫士 高節淸廉先輩道 - 경상도

   (태산고악 망부사 고절청렴 선배도)

크고 높은 산과 같고, 아버지와 선비를 우러러 보며, 높고 고결한 절개, 깨끗하고 검소하며 선배의 길을 따른다.

■ 岩下老佛 天理達 金剛山名古今宗 - 강원도

   (암하노불 천리달 금강산명 고금종)

바위 아래 늙은 부처와 같으며, 하늘의 이치를 깨달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도가 금강산과 같이 일컫는다.

■ 風前細柳 時節路 倫理道德崇尙道 - 전라도

   (풍전세류 시절로 윤리도덕 숭상도)

바람 앞의 흔들리는 버들과 같으니, 시절을 따르고, 윤리와 도덕을 따른다.

■ 明月淸風 廣山照 忠孝全心傳授統 - 충청도

   (명월청풍 광산조 충효전심 전수통)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온 산에 비추니, 충과 효에 전심을 바치고 근본을 전한다.

■ 鏡中美人 貪色慾 世間情慾相爭同 - 경기도

   (경중미인 탐색욕 세간정욕 상쟁동)

거울 속의 미인이니, 눈에 보이는 것을 탐하고, 세상에 있는 정욕을 서로 다툰다.

■ 石中耕牛 苦力中 播種收穫勞績功 - 황해도

   (석중경우 고력중 파종수확 노적공)

돌 중에 밭가는 소와 같으니 힘이 들고, 파종하고 수확하는데 고달프다.

■ 深山猛虎 出入麓 萬疊靑山嘉節中 - 평안도

   (심산맹호 출입록 만첩청산 가절중)

깊은 산 사나운 호랑이가 산기슭에 출입하니, 기쁜 시절 중에도 아름다운 산에 두려움이 많구나.

■ 四海八方相親樂泥田鬪狗解願躬 - 함경도

   (사해팔방 상친락 니전투구 해원궁)

사해 팔방에 서로 친하고, 오줌 밭에 싸우는 개처럼 몸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

사람이 지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면 살아간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새도 어느 지역분인가에 따라 특성이 나오는데.. 에전에는 더 많은 영향을 받았겠죠..

출처: http://cafe.daum.net/telcc

암호문 같기도 하고,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이런 글귀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기막힌 센스들이 있는 것인지..

취사선택(取捨選擇)이라함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세번째 물방울, 나학천(羅鶴天)의 팔도 인물평

임진왜란 때. 이여송의 지리참모로 조선에 왔던 두사충(杜師忠)의 사위인  나학천은 중국 남경의 건주(建州) 출신으로 장인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다. 그는 조선 팔도의 형상을 인체와 동물에 각각 비유하여 팔도의 인물평을 하였다.

■ 함경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머리(頭,두)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장어다

함경도 사람은 우직하지만 지혜를 가졌다. <우직지협(愚直知夾)>

■ 평안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얼굴(面,면)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매다.

평안도 사람은 의지가 강하고 용감하며 날쌔다. <견강용예(堅剛勇銳)>

■ 황해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손(手,수)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소다.

황해도 사람은 느리고 어리석어 옹골차지 않다. <우준무실(愚蠢無實)>

■ 경기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가슴(胸,흉)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범이다.

경기도 사람은 앞에는 억세고 뒤로는 부드럽다. <선용후유(先勇後柔)>

■ 강원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갈빗대(脇,협)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꿩이다.

강원도 사람은 자기 거처에 가만히 있고 아는 것이 부족하다. <칩복지단(蟄伏知短)>

■ 충청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배(腹,복)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까치다.

충청도 사람은 행동이 경솔하지만 용맹스럽다. <부경용호(浮輕勇豪)>

■ 경상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다리(脚,각)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돼지우리다

경상도 사람은 어리석고 순하고 질박하지만 참된 기질이 있다. <우순질신(愚順質信)>

■ 전라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발(足,족)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원숭이다.

전라도 사람은 속임이 많고 교활하고 가벼우나 예술성이 있다. <사교경예(詐巧輕藝)>


출처: 용궁 여주이씨 종친회 http://cafe.daum.net/ygmui

고서에나타난 팔도 인물평| 자유 게시판


네번째 물방울, 조선시대 지리학자들의 해석

조선시대 지리학자들은  조선 팔도의 풍수지리적 해석을 하면서, 땅이 인간의 심성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여, 지리인성론(地理人性論)이 발달해 왔는데, 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의견의 일치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그대로 수용할 성질 의 것은 아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수많은 인구이동과 지역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문화공간이 확산되면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하시고 여기서는 풍수지리설의 입장에서 참고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의 팔도 인심론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卜居總論), 인심(人心)편>

■ 무엇으로서 인심을 말할 것인가?

■ 공자께서 "마을의 풍속이 착하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아름다운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오." 하시었고,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은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사람이 살 고장을 찾을 때에  그 착한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비단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해가 있어서 반드시 좋지 못한 풍속이 스며들 우려가 있다. 그러니 살 곳을 가리는데, 그 땅의 세상 풍속을 보지 아니하면 안 된다.

■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평안도 인심은 순후(醇厚)하여서 제일이요, 다음은 질실(質實)한 경상도 풍속이다.

■ 함경도는 오랑캐와 접경하여 백성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악한 까닭으로 백성들이 거의가 사납고 모질다.

■ 강원도는 산골짜기 백성으로 몹시 불손하고,  전라도는 오로지 교활함을 숭상하여 그른 일에 움직이기 쉽다. 경기도는 도성 밖의 야읍(野邑)은 백성들의 재물이 시들어 쇠하였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만 따른다.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그러나 이는 서민을 두고 논한 것이요, 사대부의 풍속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렇지 않다.

성호 이익과 청담 이중환의 영호남 인물 비교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 경상도는 산수가 모두 취합하고 바람소리와 풍기(風氣)와 습관 또한 흩어지지 아니하며,  옛날 풍속이 그대로 지켜져 명현(名賢)이 배출되는 국내 최대의 길지(吉地)인 반면, 전라도는 산수가 모두 산발체(散髮體)를  이루면서  흩어져 나가 국면(局面)을 이루지 못하므로,  그 지방에는 재주와 덕행이 드물고 인정도 고약하다 하였다.

반면에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 전라도의 풍속이 노래와 여색, 부(富)함과 사치를 숭상하고 사람들이 흔히 영리하고 경박하며, 기교를 다하여 문학을 중요시하지 않는 까닭에 과제(科第)에 현달한 자는 경상도에 비해 떨어지나,  인걸은 지령인지라 역시 전라도에도 인재가 적지 아니하다. 하였다.


출처: 용궁 여주이씨 종친회 http://cafe.daum.net/ygmui

고서에나타난 팔도 인물평| 자유 게시판

그밖에 안정복의 "잡동산이"에도 팔도에 대한 평이 있다 한다.

오늘날 돈 많은 사람들은 조상님과 자신들 묘소로 이른바 명당으로 불리는 곳을 선호한다. 은연중에 형성된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은 그곳에 묻히는 조상들의 발복이 후손에까지 미친다고 믿고, 심지어 그 땅의 기운이 그곳에 사는 인간들의 인간성에까지 미친다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문제는 이러한 결과들이 실학이라는 이름으로 식자 중심으로 퍼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학문적인 업적과 지식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로 인한 무책임한 결과는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산수(山水)와 사람이 어느정도 기운을 주고 받는지 변화 많고 다양한 현대의 삶의 환경에는 적용 가능한지 논외로 하더라도, 그 살고 있는 풍수의 기운이 행정적으로 그어놓은 산수의 경계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선술집이나 한적한 정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덕담 나누듯이 나누었던 한담수준의 이야기라면 모를까 어떻게 그러한 근거가 그 땅의 사람들 인간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는지, 그것이 갖고있는 가치는 얼마나 추상적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택리지(擇里志)나 성호사설(星湖僿說)이나 잡동산이(雜同散異) 등은 우리가 구하기도 어려운 백과전서 문집류이고, 우리가 여기서 인용하는 문장들은 그 속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부분에 불과한 취사선택된 문장들이 지역감정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이루는 뼈대가 된다면 우리의 관점은 그것의 근원과 결과들을 주시하여야 한다.

처음 인터넷이나 옥외 광고판에 한줄뉴스가 출현했을 때 우리는 그것의 파괴력을 간과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줄로도 뉴스를 생산하고 모든 정보를 함축할 수 있다. 신문에서도 그 기사를 보기전 그 뽑아내는 제목으로 몇면에 걸친 기사의 내용을 알아채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한방울 두방울은 그저 재미로, 농담으로, 언어의 유희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한줄짜리 뉴스로도 남을 상처줄 수 있고 아픔을 느끼는 시대이다. 이런 불확실하고 근거없는 이야기들에 연연해서는 안되고 그로 인한 해악을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된다.

2013.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