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조선 유감(有感)

이씨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이씨조선(李氏朝鮮), 조선을 달리 일컫는 말이고 이조(李朝)라고도 한다. 머리에 먹물깨나 들었다고 힘주는 사람치고 이렇게 지칭하지 않는 이는 드물다. 한일합병 이전의 조선의 국호는 엄연히 조선(朝鮮)이었고 일제에 합방되기 직전에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이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 용어는 우리 나라가 대외적으로 결코 사용한 적이 없는 국가 명칭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사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일본이 조선을 격하시키기 위하여 이씨 왕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하여 없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 복속한 조선은 일본의 천황에 비교하여 보잘것 없는 이씨 왕(王)이 다스린 나라라는 것이다. 또 일설에는 조선 반도를 나타내는 조선이라는 땅과 정치 지배체제인 왕조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논의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이씨 왕조라는 말은 조선조 말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듯 하다. 심지어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신채호 선생도 "이조"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북한도 "리씨 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틀리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이는 이성계이고 대를 이어 임금 노릇을 한 이들도 모두 전주이씨(全州李氏)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또 우리나라 역사에 나타나는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앞에다가 "이씨"라는 명칭을 넣겠다는 것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또 중국의 예를 들어 중국 역사에 宋 왕조는 세번이나 있어서 춘추시대의 송나라, 유유(劉裕)가 건국한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유송(劉宋), 조광윤(趙匡胤)이 960년에 건국하여 당나라를 멸망시킨 송나라 조송(趙宋)을 별도로 구분해서 부른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이도 있다.

이씨조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고 이전에도 사용되었으며, 여러 조선 중에서 근세의 조선을 정확히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라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 말을 굳이 사용하여야 할 필요성 또한 별로 없다. 조선의 임금이 이씨였다는 것은 초등학교만 다녀도 다 아는 사실이고, 조선시대에 이씨 말고는 다른 성씨들은 다 죽은듯이 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성(姓)은 그 사람의 가치와 아이덴티티에서 별다른 의미도 없다. 또한 상고시대의 조선과 근세의 조선을 구분하여 구별한다는 것도 아주 희귀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없을 것이다. 고조선(古朝鮮) 즉 단군조선과 이성계가 세운 조선 사이에는 3,000년 이상의 시간차가 존재하는데 그 둘 사이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항목이 무엇이 있을 것일까?

무심코 이씨조선이라 써놓은 것에다가 줄을 긋고 조선이라고 고친다고 그 의미상의 차이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씨조선이라 부르고 이씨조선이라 쓰고 싶은 사람은..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2014.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