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영적인 각성(覺醒)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평가하여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신실히 하여 부족함이 없고 떳떳하다고 생각한듯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를 통하여 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한 존재들이며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상태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아도취 상태로서,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현 상태에 매우 만족하여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부자가 아니며 가난하고, 비참하며, 벌거벗은 상태이며, 눈이 먼 상태에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께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그것으로 옷과 안약을 사서 그들의 수치를 가리도록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내 옆에 있습니다. 아니 나의 집 문 밖에 있습니다. 아직은 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살짝 두드리는지 마구 두드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나게 두드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혹은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그 소리를 들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예수님임을 압니다. 모를 수도 있겠지요. 그가 문을 열면, 예수님은 그에게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는 그는 예수님과 함께 먹습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와 함께 먹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입니까?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까?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없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함께 먹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진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진리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인간이 오래 이 세상을 산다면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생은 생물학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반복되는 생활의 연속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늙어갈 뿐입니다. 육체의 노쇠함은 우리 정신을 위축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연령은 나이와 더불어 더욱 원숙하고 성숙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연령은 어린아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먹었어도 늙은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우리 자신은 결코 성숙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변화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성숙되기 위해서는 큰 충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변화되기 위한 선결 과제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 문을 열었다고 말하지만 변화가 없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자신은 혼자 먹고 있는지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있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습니다. 더 먹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무언가 부족하다면 그는 혼자서 먹고 있는 것입니다.
2017.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