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와 부자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실화인지 우화인지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셨다.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부자와 거지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많은 복선이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다른 말씀처럼 아주 단순하게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누가복음)


19 "There was a rich man who was dressed in purple and fine linen and lived in luxury every day.
20. At his gate was laid a beggar named Lazarus, covered with sores
21. and longing to eat what fell from the rich man's table. Even the dogs came and licked his sores." (NIV)

부자와 거지라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한다. 부자는 그냥 "어떤" 부자이고 불쌍한 거지에게는 나사로라는 이름이 있다. 나사로(Lazarus)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의미이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 옷을 입었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 자색 옷은 왕족이 주로 입었고 고운 베 옷 또한 제사장들이 입었다. 부자는 부유할 뿐더러 신분 또한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날마다 호화로운 연회를 베풀고 온갖 오락을 즐기며 걱정없이 살았다. 이에 비하여 거지는 병든 몸으로 부자집 대문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는 먹을 것이 없어 부자의 잔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다. 그뿐 아니라 그의 병든 몸에 난 상처를 핥으려고 개들이 달려들어 그를 괴롭히기까지 하였다.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2. "The time came when the beggar died and the angels carried him to Abraham's side. The rich man also died and was buried.
23. In hell, where he was in torment, he looked up and saw Abraham far away, with Lazarus by his side.
24. So he called to him, 'Father Abraham, have pity on me and send Lazarus to dip the tip of his finger in water and cool my tongue, because I am in agony in this fire.'

거지 나사로는 그런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예수님은 그가 죽을 때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다고 하셨다. 그의 죽은 육체가 어떻게 묻혔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다만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영혼은 그를 떠나 아브라함이 있는 낙원으로 갔다고 하신다. 천사들이 그가 낙원으로 들어갈 때 그를 맞이한 것이다. 부자도 죽었다. 그는 아마도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다. 친구와 친척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좋은 무덤에 훌륭하게 묻었을 것이다. 그의 죽은 육체는 향료와 좋은 천으로 감쌌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누구의 영접함도 없이 바로 음부로 떨어졌다.

그의 영혼은 심한 고통 중에 눈을 떴다. 그는 자기가 왜 이런 곳에 왔는지 어리둥절 하였을 것이다. 두리번거리다가 멀리에서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아주 훌륭한 환경에서 위로를 받고 있었다. 부자는 조상 아브라함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하였다. 거지 나사로를 자기에게로 보내 자기의 타는 듯한 혀를 식혀 달라고 하였다. 그가 살았을 때에는 누구에게라도 부탁했을 듯한 말이었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5. "But Abraham replied, 'Son, remember that in your lifetime you received your good things, while Lazarus received bad things, but now he is comforted here and you are in agony.
26. And besides all this, between us and you a great chasm has been fixed, so that those who want to go from here to you cannot, nor can anyone cross over from there to us.'

그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가 처한 현실과 그 이유를 그에게 설명하였다. 현실은 나사로가 있는 곳과 부자가 있는 곳의 왕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구렁텅이는 깊은 협곡을 말한다. 눈으로는 볼 수 있어도 서로 건너갈 수 없도록 차단된 것이다. 그런 물리적인 구조를 설계하고 두 사람을 따로 있게 한 주체는 그들의 능력과 상상을 초월한 존재일 것이다. 아뭏든 나사로는 그 곳을 갈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부자와 나사로의 현재를 있게 한 원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부자는 육체로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지금 괴로움을 당하고, 나사로는 나쁜 것을 "많이" 받았으니 지금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27. "He answered, 'Then I beg you, father, send Lazarus to my father's house,
28. for I have five brothers. Let him warn them, so that they will not also come to this place of torment.'
29. "Abraham replied, 'They have Moses and the Prophets; let them listen to them.'
30. " 'No, father Abraham,' he said, 'but if someone from the dead goes to them, they will repent.'
31. "He said to him, 'If they do not listen to Moses and the Prophets, they will not be convinced even if someone rises from the dead."

부자는 생각하였다. 지금 자기 집에는 자기가 살았던 방식대로 사는 형제들이 있다. 그러면 그들이 죽었을 때 그들도 이곳에 올 것이 뻔하다. 그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부탁하였다. 나사로를 그의 아버지 집으로 보내어 지금 그가 당하는 것을 알려 형제들이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에게 말했다.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면 된다.
부자는 다시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죽은 자가 그들에게로 가서 증언하면 그들이 "회개"하리라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그들에게 갈지라도 그들이 그 말을 듣지(납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큰 말씀 덩어리를 주신다.

1) 사람이 육체로 살 때 행하는 행동이 그들이 육체적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을 결정한다.

2)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사람들의 뜻에 관계없이 미리 설계된 곳이다.

3) 하나님은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것을 말씀하셨다.

4) 모세와 선지자들(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곳에 있는 자들이 와서 증언하여도 믿지 않는다.


이제 부자와 나사로가 죽기전 살았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자. 먼저, 부자는 아주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다. 전도서 5장19절 말씀을 보자.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Moreover, when God gives any man wealth and possessions, and enables him to enjoy them, to accept his lot and be happy in his work--this is a gift of God.

부자의 부(富)는 그 부모로부터 상속받았을 수 있고, 자기가 수고하여 재산을 늘렸을 수도 있었겠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재물과 부요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이라 한다. 그가 재물을 축적하는데 수고한 노력 유무를 떠나 그의 재물은 잠시 그의 관리 아래 들어온 것이다. 그는 먼저 그가 누리는 풍족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혹, 그것이 권세나 불법으로 모은 재물이라면 그는 더욱 겸손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노력없이 그에게 부유한 환경을 줄 수도 있지만, 그의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부를 줄 수도 있다. 그의 부귀와 재물이 영원히 자기 것이라고 여겨서 자기 소유를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마음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준엄한 판단을 받게 된다.

부자는 아마도 거지 나사로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경에는 그가 나사로를 긍휼히 여겼다는 말이 없다. 그를 심하게 무시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나 그는 나사로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거지 나사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그는 늙고 병든 몸으로 부자의 상에서 음식을 얻어 먹는 것 외에는 목숨을 부지할 어떤 방법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부자의 음식을 감사하게 받았다는 기록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다는 기록도 없다. 그가 반드시 낙원으로 갈 이유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거지 나사로는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한없이 겸손하여져서 부자의 상에 떨어진 것을 감사함으로 받았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자신의 환경을 받아 들이며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어찌됐든 두 사람은 모두 죽었다. 부자도 그의 재물을 남겨두고 무덤에 묻혔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이세상의 모든 재물은 다른 세상으로 가져갈 수 없다. 전도서 5장15절 말씀을 보자.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Naked a man comes from his mother's womb, and as he comes, so he departs. He takes nothing from his labor that he can carry in his hand.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공평하고 의로우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신 것이다. 부자는 물질적인 풍요함을 주시고 나사로에게는 괴로운 환경을 주셨다. 거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붙어있다. 정해진 수명이라는 일정한 시간이다. 부자의 부요함도 일정한 기한이 있고, 나사로의 괴로움도 기한이 있다. 그것은 영속적인 환경이 아니다. 하나님은 잠시동안 그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주신 것이다. 부자는 날마다 연회를 즐기지만 대문에 버려져 있는 나사로를 지나치면서 보았을 것이다. 나사로도 상에서 떨어진 음식을 먹으며 부자를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사로를 대하는 부자를 보시고, 부자를 보고 있는 나사로를 보셨다. 그들의 마음 속에 자라잡은 선함과 악함을 보셨을 것이다.

그들이 죽어서 맞게되는 결과는 성경에 나온 것과 같다.

나사로는 죽어서 그의 혼(Soul)이 육체에서 빠져나갈 때 천사들이 영접하여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졌다. 반면에 부자는 그의 혼이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고통을 느끼며 깨어났다.

이것은 결코 인간이 진화과정을 통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이 아니다. 육체적 죽음 이후에 영속되는 두개의 분리된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똑같이 대우하신다. 이 세상에 살 때 그가 부자이든 거지이든 그의 전체를 보신다. 그가 햇빛 아래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가 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부여된 기회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가 받을만한 자격이 있든 없든 그에게 주신다. 그가 욕심을 부리면 더 줄 수도 있다. 하나님은 다만 그가 부여된 삶에서 행하는 행동, 즉 그의 응답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는 그의 육체적 죽음 후 그의 영혼을 살리신다.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복잡하게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주는 것 만을 보고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틀어서 그 본 모습을 왜곡한다. 그것은 왜 인간에게 하나님이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요동치 않는 가치의 절대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이름 또한 "나사로"이다.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그로 인하여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자 지도층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 보다 그를 더 죽이려고 했다고 쓰여 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멸망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2020.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