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삶의 의미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것과, 또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 중에는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들은 철이 들어가면서 어렴풋이 자신의 환경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나의 부모, 형제, 친척들, 가정형편, 정신적 육체적 특성들은 알게 됩니다. 그것들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것들을 이해하면서 그것들이 내게 주어졌으며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혹자는 이것들을 우리의 운명이라 말합니다. 또는 이것을 우연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처한 우리의 인생의 조건과 환경들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섭리들로 정해졌고 우리는 그것들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가려면 이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감수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것들을 우리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변화시키기도 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순응하며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에 거역하여 살아가기도 합니다. 인생이 즐거울 때는 별로 심각하지 않은 이 문제는 인생이 어려워질 때 철학적 사유가 됩니다. 이 의미를 깨닫기 위하여 평생을 여기에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극히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인생의 기회가 한번 뿐이라 여기고 그 목적을 현실적인 욕구 충족에 두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만을 위한 만족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생의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면서도 인생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것에 끌려 다니면서 한 평생을 보냅니다. 인생의 의미를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남들과 같이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가정을 이루고 한 평생을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남들 하는 행동이 나의 규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아실현
조금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자신의 족적을 한 분야에 남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자신이 개발 가능한 능력을 계발하여 자기가 설정한 목적을 향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인생을 마감할 때 아주 만족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도덕적으로 높은 가치를 설정하고 자신의 인생의 전 여정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도덕적인 흠결이 적음에 목적을 두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규범과 가치에 대하여 남들보다도 월등한 엄격함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아실현의 목표는 자신의 자아를 어떻게 파악하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어떠한 것에 목표를 두고 전 생애를 통하여 그것을 만족하게 이루는 자아실현이 자기가 살아온 삶을 어느 정도 정당화시켜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분야에서 최정상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도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대하여 그 해답을 찾기에 목말라 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삶을 마감할 즈음에는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삶의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간의 창조 목적
하나님께서는 온 천지와 우주를 지으시고 제일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에게 가장 큰 사랑과 높은 존재 가치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으려면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축복은 대단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과 이 세상 자체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귀하게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토록 귀하게 창조한 목적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기쁨을 얻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소요리문답의 첫번째 항목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조상인 아담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죄 속에서 태어나고 육체의 생각으로 살 수 밖에 없어, 악한 마음으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뿐입니다. 그의 죄악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고 자기의 선악 기준으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들의 참 모습은 현재의 우리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현재 모습은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멀어지려고 하고 어둠과 헛된 것에 우리를 내던지려는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신성을 깨달으며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 것인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살 것인가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게 행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온전히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처한 환경도 우리가 처음 받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에덴동산 밖으로 내쫓으면서 땅은 사람들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사람들은 밭의 소산을 먹기 위하여 땀을 흘려 수고를 하여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여자들은 출산을 위하여 고통을 겪고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하는 육체적인 한계를 주셨습니다. 또 그 이후 우리들의 언어를 각 민족마다 다르게 하여 서로 같은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주신 120세라는 수명의 한계와 같이 모든 환경에 적용됩니다. 이것들을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물질적 정신적 문명이 아무리 발달을 하여도 이 제한적인 환경은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 모습인 선한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18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에베소서 2장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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